[이뉴스투데이 서병주 기자] 신세계그룹에 폭풍이 불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원칙 하에 다수의 대표이사들이 실적에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한편 평가가 유예되거나 그간의 성과를 인정 받은 이들도 존재했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이뤄진 2024년 신세계그룹 정기임원 인사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인사는 대표이사 40%가 교체되는 등 파격적인 조치가 단행되며 ‘칼바람’이 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정용진의 남자’로 불린 강희석 이마트 대표도 실적 부진으로 해임되는 등 부진이 이어진 그룹사 CEO에 대한 문책도 이뤄졌다. 그러나 올해 동안 실적 부진이 이어진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팬데믹을 견뎌낸 조선호텔앤리조트의 대표이사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명품 전문성 믿는다, 윌리엄 김 신세계인터 대표
그룹에서 패션사업을 맡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 속 실적 한파가 이어진 상반기를 보냈다.
신세계인터는 올해 상반기 영업익이 전년 대비 60.2% 감소한 28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전년 대비 12% 줄어든 646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매출을 책임진 해외 명품 브랜드의 이탈과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1,2분기 내내 실적 한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1월 선임된 윌리엄 김 대표이사는 부침에 빠진 신세계인터에 반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은 그가 직책을 수행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점, 많은 기대 속 영입한 외부인사라는 점을 고려해 유임을 결정했다.
윌리엄 김 대표는 구찌에서 CFO를, 버버리에서 리테일·디지털 수석부사장을 역임했던 명품 패션 전문가다.
최근 신세계인터가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점 역시 윌리엄 김 대표의 유임 배경으로 꼽힌다.
신세계인터는 지난 5월 인사구조 조정을 통해 단독 대표 체제로 변화하는 한편,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신규 수입 브랜드를 물색 중에 있다. 또 상반기 매출 비중 29%를 차지하며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코스메틱 부문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신세계인터는 하반기 동안 꾸레쥬와 뷰오리 등 신규 수입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힐리, 쿨티 등 향수 브랜드를 선보이며 니치향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에 대한 교통정리도 실시했다. 신세계인터는 자체 여성복 브랜드 보브와 지컷의 영업권을 자회사인 신세계톰보이에 양도했다. 양도로 신세계톰보이를 K패션 전문법인으로 만들고 해외 이커머스 입점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전망은 낙관적이다. 신세계인터의 전략에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이탈로 인한 수익 감소는 내년 상반기에는 소멸될 것”이라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코스메틱 부문의 선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펜데믹 딛고 흑자 전환···이마트로 자리 옮기는 한채양 조선호텔 대표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는 이번 인사조치를 통해 이마트와 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오프라인 유통사업군을 전담하게 됐다.
한채양 대표는 지난 2019년 조선호텔 대표로 선임 직후 팬데믹을 마주했지만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대표는 코로나19로 관광업계 전반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신사업을 발굴 및 추진하며 새로운 수익 구조를 세웠다. 그는 객실사업 침체 속 식음료(HMR) 사업을 전개하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 2020년 8월 첫 선을 보인 조선호텔의 식품은 시장에서 많은 호응을 얻으며 코로나19의 여파를 지워냈다. 실제 팬데믹이었던 2020년 조선호텔의 객실 매출은 전년 대비 53.4% 감소했지만 HMR 사업이 포함된 타 사업 부문은 7% 감소하는데 그쳤다.
HMR사업에 주력한 결과, 해당 부문은 꾸준히 성장하며 조선호텔의 새로운 수익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선호텔의 올해 상반기 HMR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119% 성장한 점을 고려하면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에 힘입어 2020년 709억원 영업손실를 기록했던 조선호텔은 지난해 영업이익 222억원을 벌어들이며 흑자전환했다.
한채양 대표는 브랜드 혁신에도 앞장섰다. 한 대표는 2020년 5월 신규 브랜드로 ‘그랜드 조선(Grand Josun)’을 선보이며 세련된 감성과 조선호텔의 전통을 챙긴 네이밍을 제시했다.
이 같은 활약상에 신세계그룹은 위기에 빠진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맡길 적임자로 한 대표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마트는 상반기 매출 14조4065억원과 영업손실 394억원, 순손실 100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한채양 대표의 인사 이동에 대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조선호텔 대표로 활동할 당시 과감한 승부수를 보여준 한 대표는 시장에서 ‘재무통’이라 불리며 그 능력을 인정 받았다”며 “반전이 필요한 이마트에게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